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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자성입니다.

오늘의 한자성어
오늘의 한자성어

 

이번 시간에는 단사표음, 단표누항, 당랑거철, 대동소이, 도청도설, 돈오점수, 동병상련, 동성이속, 득롱망촉, 등고자비, 마부작침, 마이동풍, 막상막하, 만시지탄, 망양보뢰, 망양지탄, 망운지정, 맥수지탄, 면종복배, 명약관화, 명재경각, 목불인견, 문경지교, 문일지십, 미생지신, 박이부정, 반의지희, 반포지효, 발본색원, 방약무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단사표음 簞食瓢飮 簞소쿠리 단, 食밥 사, 瓢바가지 표, 飮마실 음

「대나무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뜻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조촐한 삶을 이르는 말.

유래: 공자(孔子)가 말씀하시되, 「어질도다, 안회(顔回)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는, 좁고 더러운 집에 있음의 근심을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속에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회()여! (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2. 단표누항 簞瓢陋巷 簞소쿠리 단, 瓢바가지 표, 陋더러울(좁을) 누, 巷거리 항

「도시락과 표주박과 누추(陋醜)한 거리」라는 뜻으로, 소박(素朴)한 시골 생활(生活)을 비유(比喩譬喩)해 이르는 말.

 

3. 당랑거철 螳螂拒轍 螳사마귀 당, 螂사마귀 랑, 拒막을 거, 轍바큇자국 철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기(自己)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자(強者)에게 함부로 덤빔.

유래: 제나라(--)의 장공(莊公)이 어느 날 사냥을 갔는데, 사마귀 한 마리가 다리를 들고 수레바퀴로 달려들었다. 그 광경(光景)을 본 장공(莊公)이 부하(部下)에게 「용감(勇敢)한 벌레로구나. 저놈의 이름이 무엇이냐?」 「예. 저것은 사마귀라는 벌레인데, 저 벌레는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제 힘은 생각지 않고 한결같이 적()에 대항(對抗)하는 놈입니다.」 장공(莊公)이 이 말을 듣고 「이 벌레가 만약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천하(天下)에 비길 데 없는 용사(勇士)였을 것이다.」 하고는 그 용기(勇氣)에 감탄(感歎感嘆)하여 수레를 돌려 사마귀를 피()해서 가게 했다.

 

4. 대동소이 大同小異 大큰 대, 同같을 동, 小작을 소, 異다를 이

「혜시(惠施)의 소동이(小同異), 대동이(大同異) 론()」에서 비롯된 말로, 거의 같고 조금 다름. 비슷함.

 

5. 도청도설 道聽塗說 道길 도, 聽들을 청, 塗칠할 도, 說말씀 설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 깊이 생각 않고 예사(例事)로 듣고 말함.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뜬 소문(所聞).

유래: 반고(班固)의 소설(小說)에 대한 설명(說明) 가운데 나오는 성어(成語)이다. 「소설(小說)은 패관(稗官)으로부터 나왔으며, 가담항설(街談巷說)과 도청도설(道聽塗說)로 만들어졌다.」 또 논어(論語)에 나오는 도청도설(道聽塗說)은 다음과 같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道聽而塗說 德之棄也)」

 

6. 돈오점수 頓悟漸修 頓조아릴 돈, 悟깨달을 오, 漸점점 점, 修닦을 수

한번에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 아직은 부족(不足)하기 때문에 지속적(持續的)으로 부족(不足)함을 닦아 나가야 함.

유래: 고려(高麗) 시대(時代)에, 지눌(知訥)이 주장(主唱)한 불교(佛敎)의 선() 수행(修行) 방법(方法). 무인(武人) 정권(政權) 시기(時期)에 불교(佛敎) 교단(敎壇)을 개혁(改革)하기 위하여 주장(主張)한 사상(思想) 가운데 하나이다. 부처가 되려면 진심(眞心)을 깨닫고, 점진적(漸進的)으로 수행(修行)해야 한다고 주장(主張)하였다.

 

7. 동병상련 同病相憐 同같을 동, 病병 병, 相서로 상, 憐불쌍히 여길 련

「같은 병자(病者)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同情)하고 서로 도움.

유래: 합려(闔閭)는 자객(刺客)인 전저(專諸)를 시켜 오나라(--)의 왕 요()를 죽이고 왕위(王位)에 올랐다. 오자서(伍子胥)는 전저(專諸)를 천거(薦擧)한 공로(功勞)로 대부(大夫)가 되었고 또한 초나라(--)에서 망명(亡命)한 백비(伯嚭)를 천거(薦擧)하여 함께 정치(政治)를 하게 되었다. 그때 같은 대부(大夫) 피리(被離)가 「백비(伯嚭)를 한 번 보고 왜 그렇게 신용합니까?」라고 물으니 「그것은 그와 내가 같은 원한(怨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상가(河上歌)에 같은 병에는 서로 불쌍히 여겨 한 가지로 걱정하고 서로 구하네.」라고 대답(對答)했다. 결국 오자서(伍子胥)는 백비(伯嚭)를 경계(警戒)하는 피리의 충고(忠告)를 듣지 않다가 월나라(--)에 매수된 백비(伯嚭)의 참언(讒言)으로 분사(焚死)했다.

 

8. 동성이속 同聲異俗 同같을 동, 聲소리 성, 異다를 이, 俗풍속 속

「사람은 날 때는 다 같은 소리를 가지고 있으나, 성장(成長)함에 따라 언어(言語)ㆍ풍속(風俗)ㆍ습관(習慣)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사람의 성질(性質)은 본래(本來)는 같으나 자라난 환경(環境)과 교육(敎育)에 따라 선악(善惡)의 차가 생김을 비유(比喩譬喩)해 이르는 말.

 

9. 득롱망촉 得隴望蜀 得얻을 득, 隴고개이름(농나라) 롱, 望바랄 망, 蜀애벌레(촉나라) 촉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인간(人間)의 욕심(欲心慾心)은 한이 없음을 비유(比喩譬喩)해 이르는 말.

유래: 삼국(三國) 시대(時代), 위나라(--) 조조(曹操)와 촉나라(--)의 유비(劉備)가 한참 싸울 때의 일이다. 조조(曹操)는 촉나라(--) 북쪽에 연결되는 섬서성 남쪽 농() 땅까지 쳐들어가 그 일대를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曹操)의 부하(部下) 사마의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촉나라(--)의 본거지를 뺏을 수 있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조조(曹操)는 「인간(人間)이 만족(滿足)하기란 쉽지 않아. 이미 농() 땅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랄 것이야 없지 그것은 지나친 욕심(欲心慾心)이야.」하고 말했다. 조조(曹操)는 그것이 너무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에게도 그가 농서(隴西)를 평정(平定)한 뒤에 다시 촉()을 친 데서 유래(由來)한 이와 비슷한 고사(古事)가 있음.

 

10. 등고자비 登高自卑 登오를 등, 高높을 고, 自스스로 자, 卑낮을 비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오른다.」는 말로, 일을 하는데는 반드시 차례(次例)를 밟아야 한다는 말. 천리(千里) 길도 한 걸음부터. 지위(地位)가 높아질수록 스스로를 낮춘다는 말.

 

11. 마부작침 磨斧作針 磨갈 마, 斧도끼 부, 作지을 작, 針바늘 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努力)하면 이룰 수 있음을 비유(比喩譬喩)하는 말.

유래: 이백(李白)이 학문(學問)을 도중(途中)에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늘을 만들기 위해 도끼를 갈고 있는 한 노파(老婆)를 만났다. 그 노파(老婆)의 꾸준한 노력(努力)에 크게 감명(感銘)을 받은 이백(李白)이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학문(學問)에 힘쓴 결과 학문(學問)을 완성(完成)했다.

 

12. 마이동풍 馬耳東風 馬말 마, 耳귀 이, 東동녘 동, 風바람 풍

「말의 귀에 동풍(東風)」이라는 뜻으로, 남의 비평(批評)이나 의견(意見)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

유래: 당나라(--) 대시인(大詩人) 이백(李白)이 벗 왕십이(王十二)로부터 「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 추운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낀 바 있어서)」 라는 시 한 수를 받자 이에 답하여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시를 보냈는데 마이동풍은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 장시(長詩)인 이 시에서 이백(李白)은 「우리네 시인(詩人)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이 세상(世上) 속물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세인문차개도두 : 世人聞此皆掉頭) 마치 동풍에 쏘인 말의 귀처럼 (유여동풍사마이 : 有如東風射馬耳)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지나쳐 흘려버림」

 

13. 막상막하 莫上莫下 莫없을 막, 上위 상, 莫없을 막, 下아래 하

어느 것이 위고 아래인지 분간(分揀)할 수 없음.

 

14. 만시지탄 晩時之歎 晩늦을 만, 時때 시, 之갈 지, 歎탄식할 탄 

「때늦은 한탄(恨歎)」이라는 뜻으로, 「시기(時期)가 늦어 기회(機會)를 놓친 것이 원통(寃痛)해서 탄식(歎息)함.」을 이르는 말.

유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처럼, 때를 놓쳐 기회(機會)를 잃고 탄식(歎息嘆息)하는 것을 말한다. 정()해진 시간(時間)이나 시기(時機)를 맞추지 못하고, 너무 늦어서 다시 돌이킬 수 없어, 일이 다 지나간 뒤에 때늦은 탄식(歎息嘆息)을 해도 아무 소용(所用)이 없다는 말이다.

 

15. 망양보뢰 亡羊補牢 亡망할 망, 羊양 양, 補기울 보, 牢우리 뢰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失敗)한 후()에 일을 대비(對備)함. 이미 어떤 일을 실패(失敗)한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음.

유래: 전국시대(戰國時代) 초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大臣)이 양왕(襄王)에게 간신(奸臣)을 멀리하고, 사치(奢侈)스런 생활(生活)을 그만두고 국사(國事)에 전념(專念)할 것을 충언(忠言)하였다. 양왕(襄王)은 이를 무시(無視)하였으나, 진나라(--)의 침공(侵攻)으로 결국(結局) 망명(亡命)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제서야 잘못을 깨닫고 장신(莊辛)을 불러 대책(對策)을 물었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라고 장신(莊辛)이 대답(對答)했다. 이후(以後)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이미 소용(所用)이 없다.」는 부정적(否定的)인 의미(意味)로 바뀌었다.

 

16. 망양지탄 亡羊之歎 亡망할 망, 羊양 양, 之갈 지, 歎탄식할 탄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學問)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眞理)를 찾기 어려움. 방침(方針)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

유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사상가(思想家)로 극단적(極端的)인 개인주의(個人主義)를 주장(主張)했던 양자(襄子)와 관계(關係)되는 이야기이다. 하도 소란(騷亂)스러워서 양자(襄子)가 물었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襄子)는 우울(憂鬱)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제자(弟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對答)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날 선배(先輩)를 찾아가 스승인 양자(襄子)가 침묵(沈默)하는 까닭을 물었다. 선생님은 「큰 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學者)는 다방면(多方面)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本性)을 잃는다. 학문(學問)이란 원래 근본(根本)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 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根本)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現實)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17. 망운지정 望雲之情 望바랄 망, 雲구름 운, 之갈 지, 情뜻 정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타향(他鄕)에서 고향(故鄕)에 계신 부모(父母)를 생각함. 멀리 떠나온 자식(子息)이 어버이를 사모(思慕)하여 그리는 정().

유래: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병주(幷州) 법조참군(法曹參軍)에 있을 때,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 땅 별업(別業)에 계신데, 적인걸(狄仁傑)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반복(反復)하여 돌아보면서 흰 구름이 외롭게 나는 먼 곳을 좌우(左右) 사람에게 일러 말하되 「내 어버이가 저 구름이 나는 아래에 계신데, 멀리 바라만 보고 가서 뵙지 못하여 슬퍼함이 오래되었다.」 하고 구름이 옮겨 간 뒤에 이에 산()에서 내려왔다.

 

18. 맥수지탄 麥秀之歎 麥보리 맥, 秀빼어날 수, 之갈 지, 歎탄식할 탄

「보리만 무성(茂盛)하게 자란 것을 탄식(歎息)함.」이라는 뜻으로, 고국(故國)의 멸망(滅亡)을 탄식(歎息)함.

유래: 은()의 주왕(紂王)은 하()의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暴君)의 대표적인 인물(人物)이었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신하(臣下) 셋이 있었는데 미자(微子)ㆍ기자(箕子)ㆍ비간(比干)이었다. 주왕(紂王)은 이들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고 주색(酒色)에 빠져 있었던 까닭으로 결국 주나라(--)의 무왕(武王)에게 정복(征服)당하고 말았다. 몇 해 뒤 기자(箕子)가 주나라(--)를 찾아가는 도중에, 맥수지가(麥秀之歌)를 지어「보리이삭은 쑥쑥 자라 있고, 벼, 기장도 잘 자라네. 저 교활(狡猾)한 아이여, 나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도다. <麥秀漸(맥수점) 漸兮(점혜)여, 米黍油油(미서유유)라. 彼狡童兮(피교동혜)여, 不與我好兮(불여아호혜)로다.>」하고 은()의 도읍은 간데 없고 궁궐터(宮闕-)에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함을 탄식(歎息嘆息)했다.

 

19. 면종복배 面從腹背 面낯 면, 從따를 종, 腹배 복, 背배신할 배

겉으로는 순종(順從)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음.

 

20. 명약관화 明若觀火 明밝은 명, 若같을 약, 觀볼 관, 火불 화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뜻으로,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明白)함.

 

21. 명재경각 命在頃刻 命목숨 명, 在있을 재, 頃이랑 경, 刻새길 각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렸다.」는 뜻으로, 숨이 곧 끊어질 지경(地境)에 이름. 거의 죽게 됨.

 

22. 목불인견 目不忍見 目눈 목, 不아닐 불, 忍참을 인, 見볼 견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程度)로 딱하거나 참혹(慘酷)한 상황(狀況).

 

23. 문경지교 刎頸之交 刎목 벨 문, 頸목 경, 之갈 지, 交사귈 교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으로, 생사(生死)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所重)한 벗.

유래: 전국시대(戰國時代)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 때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宦官)의 식객(食客)에 불과(不過)했던 인상여(藺相如)를 경대부(卿大夫)에 임명(任命)하자 염파(廉頗)는 불만(不滿)이 대단했다. 그래서 인상여(藺相如)를 만나면 망신(亡身)을 주리라 생각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인상여(藺相如)는 염파(廉頗)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니, 부하(部下)들이 「왜 그렇게 염장군을 두려워합니까?」라고 물었다. 인상여(藺相如)가 「진나라(--)가 공격(功擊)하지 못하는 이유(理由)는 나와 염() 장군(將軍)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나라가 위태(危殆)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염파(廉頗)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옷을 벗어 살을 드러내고 곤장(棍杖)을 지고 인상여(藺相如)의 집에 이르러 사죄(謝罪)하며 말하기를 「비천(卑賤)한 사람이 장군(將軍)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했다.」라고 했다. 마침내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문경지우(刎頸之友)가 되었다.

 

24. 문일지십 聞一知十 聞들을 문, 一한 일, 知알 지, 十열 십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뜻으로, 총명(聰明)함을 이르는 말.

유래: 공자(孔子)는 자공(子貢)이 안회(顔回)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자네와 안회(顔回)는 누가 더 나을 것같이 생각되는가?」 하니, 「소생(小生)이 어찌 감()히 안회(顔回)와 비교(比較)할 수 있겠습니까? 안회(顔回)는 하나를 듣고서 열을 알지만, 소생(小生)은 하나를 듣고서 겨우 둘을 아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확실히 자네는 안회(顔回)를 따를 수 없다. 따를 수 없는 것은 자네만이 아니라 나도 안회(顔回)를 따르지 못하는 점이 있다네.」라고 했다. 자공(子貢)과 안회(顔回)는 나이가 엇비슷했으며, 둘 다 공문십철(孔門十哲) 속에 들어 있다. 자공(子貢)은 언어(言語)에 있어서, 안회(顔回)는 덕행(德行)에 있어서 공자(孔子)의 문하(門下)를 대표(代表)하고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은 경제적(經濟的)으로는 대조적(對照的)이었다. 안회(顔回)는 가난하여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고, 자공(子貢)은 장사 솜씨가 능란(能爛)하여 많은 재산(財産)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事實) 안회(顔回)는 가난으로 인()한 영양(營養) 부족(不足)으로 20대에 벌써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그리하여 불우(不遇)한 가운데 일찍 죽고 말았다. 공자(孔子)는 안회(顔回)를 후계자(後繼者)로 기대(期待企待)하고 있었다. 그 죽음을 듣고, 「하늘은 나를 버리셨구나!」 하고 탄식(歎息嘆息)했다고 한다.

 

25. 미생지신 尾生之信 尾꼬리 미, 生날 생, 之갈 지, 信믿을 신

「미생(尾生)의 믿음」이란 뜻으로, 우직(愚直)하게 약속(約束)만을 굳게 지킴. 또는 융통성(融通性)이 없이 약속(約束)만을 굳게 지킴을 비유(比喩譬喩).

유래: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은 일단 남과 약속(約束)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성격(性格)의 소유자(所有者)였다. 어느 날, 여자(女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約束)했는데, 여자(女子)는 그 시간에 나타나질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 소나기가 쏟아져 큰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그러나 미생(尾生)은 「이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約束)했으니, 이 자리를 떠날 수는 없다.」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교각(橋脚)을 붙잡고 버텼으나 급류(急流)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장자(莊子)는 도척편(盜跖篇)에서 「이런 자는 책형(기둥에 결박하여 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刑罰))된 개, 물에 쓸린 돼지, 깨어진 사발을 한 손에 들고 걸식하는 거지와 같으며, 사소한 명목에 끌려 진짜 귀중(貴重)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자이며, 참다운 삶의 도리(道理)를 모르는 어리석은 놈이니라.」 하고, 그 어리석음을 규탄(糾彈)하면서 이는 신의에 얽매인데서 오는 비극(悲劇)이라 했다.

 

26. 박이부정 博而不精 博넓은 박, 而이을 이, 不아닐 부, 精정할 정

「널리 알지만 자세(仔細子細)하지는 못하다.」는 뜻으로, 여러 방면(方面)으로 널리 아나 정통(精通)하지 못함. 널리 알되 능숙(能熟)하거나 정밀(情密)하지 못함.

유래: 동한(東漢) 때 경학가(經學家)로 이름난 정중(鄭衆)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경전(經典)을 깊이 연구(硏究)하고 학문(學問)이 뛰어나 명성(名聲)이 자자(藉藉)하였다. 또 후한(後漢) 때의 유학자(儒學者)인 가규(賈逵)는 뒷날 마융(馬融)ㆍ정현(鄭玄) 등이 고문경서(古文經書)의 학문(學問)을 대성(大成)할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았다. 마융(馬融)은 후한(後漢) 때의 학자(學者)로 경전(經典)을 쉽게 풀이한 글을 남겼다. 마융(馬融)은 전대(前代)의 경학자(經學者)였던 가규(賈逵)와 정중(鄭衆)의 글을 보고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言及)하였다. 「가() 선생(先生)은 정밀(精密)하나 두루 알지 못하고, 정() 선생(先生)은 두루 아나 정밀(精密)하지 못하니, 정밀(精密)하면서 박식(博識)한 것으로는 누가 나보다 낫겠는가.(賈君精而不博 鄭君博而不精 既精既博 吾何加焉)」

 

27. 반의지희 斑衣之戲 斑아롱질 반, 衣옷 의, 之갈 지, 戲놀이(희롱할) 희

「때때옷을 입고 하는 놀이」라는 뜻으로, 늙어서도 부모(父母)에게 효양(孝養)함을 이르는 말. 부모(父母)를 위로(慰勞)하려고 색동 저고리를 입고 기어가 보임.

유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주나라(--)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여 부모(父母)를 잘 봉양(奉養)했다. 그도 나이가 들어 70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울긋불긋한 때때옷을 입고 어린아이 흉내를 내어 부모(父母)를 기쁘게 해드리더니, 또 하루는 물을 들고 대청(大廳)으로 올라가다 일부러 곱드러지더니 마룻바닥에 누워 뒹굴었다. 그리고 아이처럼 앙앙 울며 부모(父母) 곁에서 자꾸 아기 시늉을 했다. 그는 이처럼 언제나 부모(父母)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다고 한다.

 

28. 반포지효 反哺之孝 反되돌릴 반, 哺먹을 포, 之갈 지, 孝효도 효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孝誠)」이라는 뜻으로, 자식(子息)이 자라서 부모(父母)를 봉양(奉養)함.

유래: 까마귀는 새끼가 깨면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데, 그 까마귀가 자라나면 역시 60일 동안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길러 준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한다고 한다.

 

29. 발본색원 拔本塞源 拔뺄 발, 本근본 본, 塞막힐 색, 源근원 원

「근본(根本)을 빼내고 원천(源泉)을 막아 버린다.」는 뜻으로, 사물(事物)의 폐단(弊端)을 없애기 위()해서 그 뿌리째 뽑아 버림을 이르는 말.

유래: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심은 마치 의복에다 갓이나 면류관(冕旒冠)을 갖춘 것과 같고, 나무의 뿌리와 물의 수원이 있는 것과 같고 백성(百姓)들에게 지혜(智慧)로운 임금이 계신 것과 같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고 면류관(冕旒冠)을 부수고 근본(根本)을 뽑고 근원(根源)을 막으며 오로지 지혜(智慧)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일지라도 그 어찌 나 한 사람뿐이리오.」.

 

30. 방약무인 傍若無人 傍곁 방, 若같을 약, 無없을 무, 人사람 인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周圍)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意識)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行動)하는 것을 이르는 말.

유래: 위나라(--) 사람인 형가(荊軻)는 성격(性格)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으며, 문학(文學)과 무예(武藝)에 능했고, 애주가였다. 그는 정치(政治)에 관심이 많아 청운(靑雲)을 품고 위나라(--)의 원군(元君)에게 국정(國政)에 대한 자신(自身)의 포부(抱負)와 건의(建議)를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나라(--) 및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현인(賢人)과 호걸(豪傑)과 사귀기를 즐겼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연나라(--)에서 사귄, 비파(琵琶)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인데 이 두 사람은 호흡(呼吸)이 잘 맞아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술판을 일단 벌여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고성 방가했다. 그러다가 신세(身世身勢)가 처량함을 서로 느껴 감정(感情)이 복받치면 둘이 얼싸안고 울기도 웃기도 했다. 이때 이 모습은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방약무인(傍若無人)해 보였다. 원래 방약무인은 아무 거리낌없이 당당한 태도(態度)를 말했는데 변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무례(無禮)하거나 교만(驕慢)한 태도(態度)를 표현(表現)할 때 인용(引用)된다. 이후 진나라(--)의 정(:훗날 시황제)에게 원한(怨恨)을 품고 있던 연나라(--)의 태자(太子) 단()이 형가의 재주를 높이 평가(評價)하여 그에게 진시황제(秦始皇帝) 암살(暗殺)을 부탁했다. 형가는 단의 부탁으로 진시황제(秦始皇帝) 암살(暗殺)을 기도했지만 진시황제(秦始皇帝)의 관복만 뚫었을 뿐 암살(暗殺)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진시황제(秦始皇帝)에게 죽임을 당했다. 암살(暗殺)하기 위해 진나라(--)로 떠나기 전 그가 읊은 노래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찬데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不還>」라는 귀절은 유명(有名)하다. 이 노래를 들은 이는 모두 눈을 부라리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았다고 한다.

 

국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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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요한 업적 중 대부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 미국 처세술 전문가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가 1936년에 출간한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카네기가 사망한 1955년까지 31개 언어로 번역돼 5백만권 이상 판매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1500만권 이상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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