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비다비다입니다.
"한능검요약은 양치질이다."
식사 후 양치하지 않고 지나가면 너무 찝찝하잖아요. 이제 한능검요약 하루라도 거르면 기분이 너무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이 글은 한능검요약, 일제 강점기, 사회 경제 민족 운동 중에서 시험에 자주 출제되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글의 순서는 1. 물산 장려 운동 2. 민립대학 설립운동 3. 문맹 퇴치 운동 4. 대중적 사회 운동 5. 국외 이주 동포들의 삶 |
1. 물산 장려 운동
회사령이 철폐되고 일본 상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성 방직 주식회사 등 민족 기업을 지원하고 민족 경제의 자립을 달성하여야 한다는 목표로 평양에서 조만식 등을 중심으로 1920년에 조산 물산 장려회가 조직됩니다.
서울에서도 1923년 조산 물산 장려회가 조직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작회, 여성들을 중심으로 토산 애용 부인회 등을 중심으로 조선의 물산을 애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일본 상품 배격, 토산품 사용을 주창합니다.
근검저축, 생활개선, 금주, 금연 운동을 통해서 민족 자본 육성을 추구하였습니다. 물산 장려 운동은 늘어난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민족 자본의 부족과 상품의 가격 상승,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의 중산 계급을 위한 운동이라는 비판으로 한계에 부딪치고 맙니다.
2. 민립 대학 설립 운동
3.1 운동 이후 교육열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조선 교육령 개정으로 대학 설치 규정이 마련되었습니다. 한규설, 이상재 등을 중심으로 조선 교육회가 주도하여 1922년에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결성되고 1923년에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조직됩니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일제의 방해 공작과 남부 지방의 가뭄과 전국적인 수해로 모금 운동의 결과가 부진했습니다. 일제는 무마책으로 1924년에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하게 됩니다.
3. 문맹 퇴치 운동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 정책과 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사립학교 설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육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여러 형태의 문맹 퇴치 운동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야학을 통해서 민족 교육을 강화하였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우리말 교재로 만든 한국의 역사, 지리, 한글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1929년 조선일보가 주도하여 '아는 것이 힘, 배워야 한다'는 표어로 문자 보급 운동을 실시하였습니다. 1931년에는 동아일보 주관으로 브나로드 운동을 통해서 학생들이 농촌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조선어 학회에서는 문자 보급 운동에 사용할 교재를 제작하고 한글 강습회 등을 개최하였습니다. 문맹 퇴치 운동은 민족적 성격으로 강화되어 갔고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제의 탄압으로 대부분이 중단됩니다.
4. 대중적 사회 운동
농민운동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민의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어갔습니다. 소작농은 증가하고 고율의 소작농 징수로 그 고통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1923년 암태도 소작 쟁의가 일어났습니다. 1927년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1930년대에 사회주의 계열에서 혁명적인 농민 조합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운동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노동자의 삶이 피폐해져 갔습니다. 노동자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이 고조되었습니다. 1920년 조선 노동 공제회를 만들었습니다.
1924년 조선 노농 총동맹을 결성합니다. 1927년 조선 노동 총동맹을 조직합니다. 대표적인 노동 쟁의에는 1923년 경성 고무 공장 여공의 아사 동맹, 1929년 원산 총파업, 1931년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 농성 등이 있습니다.
기타
방정환의 주도, 천도교 소년회 중심으로 1921년, 어린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해달라는 소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어린이날이 제정되고 <어린이> 잡지가 간행됩니다.
근우회를 중심으로 여성 노동자, 농민 계몽 활동이 1927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정치-사회의식이 고양되어 갔습니다. 신분제 철폐 이후에도 여전히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문제로 인해 진주에서 1923년에 조선 형평사가 결성되었고 형평 운동은 전국적 조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5. 해외 동포들의 삶
만주 : 만주에서는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활동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26년 간도 참변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1931년 일제의 이간질로 만보산 사건이 일어나면서 중국인과의 감정이 악화되는 일들도 겪었습니다. 일제가 만주 침략 후 한국인 농민을 강제 이주시켜 황무지 개간에 이용당하기도 했습니다.
미주 : 20세기 초 하와이 공식 이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대한인 국민회, 대조선 국민군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구미 위원부 등을 세웠습니다.
연해주 : 신한촌 등 한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었고 권업회, 대한 광복군, 대한 국민 의회 등 민족 단체와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일본 : 일본 정부는 관동 대지진 발생의 원인을 한국인에게 돌렸고 일본인들이 조직한 자경단에 의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학살되었습니다. 징용령에 의해 수십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의 탄광, 공장 등에서 강제 노역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역경의 시기를 보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능검요약, 일제강점기, 사회 경제적 민족 운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당시 해외 동포들의 삶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한국사를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서 나라 잃은 슬픔과 힘없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한능검요약으로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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