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비다비다입니다.
"한능검요약은 삶의 활력소다."
요즘 매일 역사 공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이 글은 한능검요약, 일제 강점기, 국외 무장 독립 전쟁에 관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1. 국외 독립 투쟁
1) 무장 독립 운동 단체의 결성
서간도 지역에서는 의병 세력을 중심으로 대한독립단이 구성되었습니다. 신흥 무관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서로 군정서가 세워졌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속 부대인 광복군 총영이 있었습니다.
북간도 지역에서는 대한 국민회 산하 부대들이 대한독립군을 결성하였습니다. 중관단이 개편되어 북로 군정서가 되었고 사관 연성소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였습니다.
2) 1920년대 무장 독립 운동
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를 소개합니다. 1920년 6월에 봉오동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의 연합부대가 일본군을 크게 이긴 전투입니다. 전투에 참가한 부대는 대한독립군(홍범도), 군무 도독부군(최진동), 국민회군(안무) 등 입니다. 독립군이 국내로 진입하였습니다. 일본군이 두만강 이북까지 독립군을 추격해 왔습니다. 독립군 연합 부대가 봉오동 지역에서 매복 작전으로 일본군을 대파하였습니다.
청산리 대첩
청산리 대첩을 소개합니다. 1920년 10월에 청산리에서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와 대한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참가 부대는 북로 군정서(김좌진), 대한독립군(홍범도) 등 입니다. 일본은 훈춘 사건을 일으켜 일본군을 만주로 보냅니다. 간도 지방의 독립군이 백두산으로 이동합니다. 청산리 일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은 크게 격파시킨 전투입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군은 간도 지역에 대대적인 보복을 합니다.
간도 참변
첫 번째, 1920~1921년에 일어난 간도 참변입니다. 일본군이 간도 한인촌을 습격합니다. 3~4개월 간 수많은 한국인들을 학살하고 민가와 학교 등을 불태웠습니다. 간도 참변 이후 독립군 주력 부대가 일산에 집결하여 러시아 자유시(스보보드니)로 이동하게 됩니다.
자유시 참변
두 번째, 1921년에 일어난 자유시 참변입니다. 자유시의 독립군 통합 과정에서 지휘권을 놓고 분쟁이 발생합니다. 러시아군이 개입하여 지휘권 양도를 요청합니다. 이를 거부하는 독립군을 러시아군이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수많은 독립군이 희생됩니다.
3부 성립과 통합 운동
세 번째, 결과적으로 3부가 성립됩니다. 독립군이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로 나뉘게 됩니다. 참의부(1923)는 압록강 건너편 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속 부대를 표방합니다. 정의부(1924)는 남만주 지린과 봉천을 중심으로 참의부에 참여하지 않는 세력들이 통합하여 결성합니다. 신민부(1925)는 북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자유시 참변을 겪고 돌아온 독립군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1925년, 조선 총독부와 만주 군벌 간에 미쓰야 협정이 체결되면서 독립군의 활동이 위축됩니다. 북만주 지역에서 결성된 혁신 의회는 이후 한국 독립당으로 개편되면서 3부를 통합하여 한국 독립군으로 편성하고자 합니다. 남만주 지역에서 결성되어진 국민부는 이후 조선 혁명단을 창설하고 3부를 통합하여 조선 혁명군을 구성하고 합니다.
3) 1930년대 무장 독립 운동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항일 무장 독립 운동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1931년에 있었던 만주 사변으로 중국 내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습니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항일 연합 전선이 결성됩니다.
한국독립군
혁신의회(한국독립당)의 군사 조직인 한국독립군(지청천)이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사도하자-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격파합니다. 일본군이 이들 연합군을 공격하자, 중국 관내로 이동합니다.
조선혁명군
남만주 국민부(조선혁명당)의 군사 조직인 조선혁명군(양세봉)은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합니다.
중국 관내에서도 항일 무장 독립 운동이 민족혁명당, 한국국민당, 조선의용대 등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민족혁명당(1935)은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이 모여 조직하였습다. 한국국민당(1935)은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조직되었습니다. 조선의용대(1938)는 중일전쟁 발발 후 김원봉 등이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에 결성한 조직입니다. 중국 관내에게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입니다. 일부는 화북으로 이동하여 후에 조선의용군(1942)으로 개편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또 일부는 한국 광복군에 합류하기도 합니다.
4) 1940년대 무장 독립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정비
한국독립당이 1940년 결성이 됩니다. 한국국민당(김구), 한국독립당(조소앙), 조선혁명당(지청천)이 통합을 한 것입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를 따라 충칭에 정착을 합니다. 그리고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총사령관으로 지청천을 세웁니다.
가장 먼저,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대일 선전 포고를 합니다. 1943년 영국의 요청을 받고 미얀마, 인도 전선에 공작대를 파견합니다. 미국 전략 정보국과 협력하여 국내 정진군의 특수 훈련을 실시합니다.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하지만, 일제의 패망으로 실현되지 못합니다. 건국 강령을 공포합니다.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국 수립과 삼균주의 규정이 주된 내용입니다.
조선 독립 동맹
중국 옌안에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김두봉의 주도로 1942년에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합니다. 이들 또한 보통 선거에 의한 민주 공화국 수립을 강령으로 제시합니다. 군사 조직은 조선의용군입니다.
지금까지 한능검요약, 일제 강점기, 국외 무장 독립 운동에 관한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한능검시험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 파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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